1988, 1991, 1994, 1995, 1997, 1999, 2000년까지
10년 상간에 태어 난 아이들은 사실 같은 세대이면서 같은 세대가 아니다.
한해한해 지날수록 사라지고 급격하게 생기는 환경과 반응들이 아주 극단적이다.
친구와 싸우다 주먹으로 얼굴이나 명치를 때리는 일도 현저히 줄었다.
집에 혼자 있다고 해서 밥을 직접 해 먹어야 하는 일도 잘 없다.
형제와 방을 같이 쓰며 매일매일 싸워야 하는 상황도 잘 없다.
해가 가면서 비교적 뒤늦게 태어나는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겪을 필요도, 갈등할 필요도, 여기에서 배울 필요도 없어진다.
부모들도 이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별 관심이 없다. 그냥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희망만 품고 있다. 살기 바빠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잘 자라지 못 하는 것 같은 불안감이 들면 아이들을 어딘가로 보내버린다. 예를 들면, 대안학교, 할머니집, 좋은 학교, 뭐 그런 곳 말이다.
이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화가 나는 것은 이런 것들을 겪었으면서 이 아이들과 밀접해 있는 사람들 뿐이다. 하지만 남이다.
모르고 자란 아이들은 시시함을 느낀다. 자기가 처한 이 근본적인 문제를 의심하거나 증명해보이겠다는 욕구조차 느끼지 못 한다.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유지, 보수자의 운명을 띠고 세상에 났다. 이 사회에서 새로 뭔가를 설계하거나 건설할 일없이 이미 만들어진 사회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게 이들의 임무라는 뜻이다. 이들은 부품으로 태어나 노예로 죽을 팔자다.
나는 여기서 나를 포함해 이런 사명을 부여받은 우리 세대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해서 만성적인 좌절감에 빠지는지 밝히고, 그런 좌절감이 누구의 탓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원인에서 기인한 근본적인 문제임을 증명해보겠다. 또 타고난 능력과 근면, 성실함으로 개인적인 성취를 이루는 것은 우리가 겪고있는 굴욕에 대한 답이 아니며, 그런 성공은 본질적으로 시시한 것임을 논해 보겠다.
- <사랑, 장애> 중에서